부산광역시는 각 구마다 저마다의 지리적 특징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독특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는 각각 항구도시, 도시 확장지, 전통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이들의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를 넘어 시대와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부산광역시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 영도구: ‘신선의 섬’에서 다리로 연결된 도시로
영도구는 부산항 동쪽에 위치한 섬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육지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 섬이었다. ‘영도(影島)’라는 이름은 다양한 설을 품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어원은 ‘섬에 비친 그림자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그림자 영(影)’ 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에는 이곳이 신선이 놀던 섬이라 하여 '영도(靈島)'라 불렸다가 후에 한자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 고지도에서는 ‘영도’ 대신 ‘절영도(絶影島)’라는 명칭이 등장하며, 이는 ‘그림자가 끊어진 섬’, 즉 말의 그림자조차 사라질 정도로 빠른 속도의 말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영도구의 행정동은 남항동, 영선동, 봉래동, 청학동, 동삼동, 신선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선동(影善洞)’은 과거 ‘선영(善影)’ 또는 ‘절영(絶影)’의 이름에서 변형되었으며, 선인의 그림자 혹은 신선한 기운이 머물렀다는 풍수적 해석도 가능하다.
‘봉래동(蓬萊洞)’은 중국 신화 속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蓬萊山)에서 유래했으며, 실제로 봉래산 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이름처럼 ‘신선의 동네’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청학동(靑鶴洞)’은 파란 학이 내려앉은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민간 설화에 바탕을 둔 자연 지명이다.
‘동삼동(東三洞)’은 영도의 동쪽 끝자락에서 세 개의 마을이 합쳐졌다는 데서 유래했고,
‘신선동(神仙洞)’은 영도 전역에 퍼진 ‘신선 전설’에서 영향을 받아 명명되었다.
오늘날 영도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지명은 여전히 섬의 고유성과 신비성을 간직하고 있다.
🔹 부산진구: 근현대 부산의 중심지, 진(鎭)의 이름을 품다
부산진구는 부산의 중심권역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급격히 도시화된 대표적 시가지이다. 지명의 ‘진(鎭)’은 군사 방어 기지 또는 성(城)을 의미하며, 조선시대 ‘부산진성’이 있던 지역에서 유래하였다. 부산진성은 왜구 방어를 위해 설치된 수군 방어 거점으로, 오늘날의 좌천동·범일동 인근에 있었다. 이 진의 이름을 따서, 주변 확장 지역을 포함하는 행정구역이 ‘부산진’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부산진구의 행정동에는 부전동, 전포동, 서면, 양정동, 당감동, 가야동, 범전동, 개금동, 초읍동, 연지동 등이 포함된다.
‘부전동(釜田洞)’은 '부산의 들판'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고, 실제로 조선시대엔 농경지였으나 개항 후 시가지로 변모했다.
‘전포동(田浦洞)’은 논밭(田)과 포구(浦)를 뜻하는 지명이 합쳐진 형태로, 포구 옆 논밭이 많았던 곳이다.
‘서면(西面)’은 본래 동래부의 서쪽 면리였던 지역으로, 행정구역명이 현재까지 유지된 사례이다.
‘양정동(楊亭洞)’은 버드나무(楊)가 늘어진 정자(亭)가 있었다는 뜻에서 유래한 고유 자연지명이다.
‘당감동(堂甘洞)’은 ‘사찰이 많고 물맛이 좋았던 지역’이라는 전설에서, ‘당(堂)’과 ‘감(甘)’이 결합된 명칭이다.
‘가야동(伽倻洞)’은 인근에 위치한 가야고분군과 관련된 유적에서 비롯되었으며, 삼국시대 가야문화권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초읍동(草邑洞)’은 초지(풀밭)의 마을이라는 의미이고, ‘연지동(蓮池洞)’은 ‘연못이 많던 동네’에서 유래되었다.
이처럼 부산진구는 조선 후기에 군사적 요충지였던 ‘진’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교통과 상권의 핵심지로 성장한 복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 동래구: 천년의 고을, 동래현에서 동래구로
동래구는 부산의 전통 중심지이자 오랜 역사와 문화 유산이 풍부한 지역이다. '동래'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동래현(東萊縣)’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동쪽의 기운이 맑고 넓게 퍼지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래는 조선시대에는 경상좌도 동래부로 승격되어 부산·울산 일대의 행정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동래구에는 명륜동, 복천동, 온천동, 수안동, 사직동, 명장동, 낙민동, 안락동, 칠산동 등이 속해 있다.
‘명륜동(明倫洞)’은 유교적 교육기관인 서원과 향교가 위치해 있던 곳으로, '인륜을 밝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복천동(福泉洞)’은 ‘복이 샘솟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신라·가야 고분군이 다수 발견되어 고대사 연구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온천동(溫泉洞)’은 말 그대로 온천이 솟아나는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조선시대부터 온천 유양(療養) 명소로 이용되어 왔다.
‘수안동(水安洞)’은 ‘물이 편안히 흐르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온천천 지류가 흐르던 평야지대에서 유래하였다.
‘사직동(社稷洞)’은 국가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기원하던 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명장동(鳴藏洞)’은 학이 울어대던 계곡이라는 설화적 전승이 있으며, 또는 ‘명당에 숨은 마을’이라는 해석도 있다.
‘낙민동(樂民洞)’은 ‘백성들이 즐겁게 사는 마을’이라는 유교적 이념에 기반한 명칭이다.
‘안락동(安樂洞)’은 ‘편안하고 즐거운 마을’이라는 이상적 공동체 지향에서 유래하였다.
‘칠산동(七山洞)’은 일곱 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는 자연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 지명이다.
동래구는 지금도 동래읍성과 동래온천, 동래향교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표적인 전통도시의 모습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 지명 유래 및 역사이야기
부산광역시의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는 각각 섬, 항구, 내륙 행정 중심지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발전한 지역이며,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 흐름을 형성하는 핵심 구역이다.
영도구는 본래 ‘절영도(絶影島)’로 불리며, 빠르게 달리는 명마가 그림자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말 사육지였고, 근대에는 부산항의 해양 물류 관문으로 기능했다. 1934년 개통된 영도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교로, 육지와 섬을 잇는 상징적 구조물이다.
부산진구는 ‘부산진성’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조선시대 일본과의 교역을 관리하던 군사 진영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 도시화의 중심이 되었고, 지금의 서면 일대가 경제·행정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동래구는 고려시대부터 ‘동래현’이라는 행정 명칭으로 존재한 오래된 고을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상좌도의 관아가 위치한 동래부로 격상되었으며, 임진왜란 발발 시 최초 전투가 벌어진 동래읍성은 지역 항쟁의 상징이다. 동래는 교육, 온천,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전통문화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이 세 구역은 각각 부산의 신화적 기원(영도), 도시적 성장(부산진), 전통과 충절의 상징(동래)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오늘날에도 그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도시 속 시간의 축을 이어가고 있다.
📚 주요 문화유산 및 명소 / 설화·전설 모음
부산의 문화적 뿌리와 정신적 유산은 원도심을 넘어 영도, 부산진, 동래라는 세 지역을 통해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이들 지역은 단순한 지리적 경계 이상으로, 지역민의 기억, 믿음, 생활 문화가 녹아 있는 문화유산과 전설의 보고이다. 각 지역의 명소는 단지 관광지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의 현장이며, 그에 얽힌 설화는 도시의 정체성과 전통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다.
🔹 영도구 – 신선과 전설의 섬, 그리고 조선 수군의 요충지
영도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 지형이라는 특성상,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중심에는 절영도(絶影島)라는 옛 지명이 있다. ‘말 그림자조차 끊긴다’는 뜻의 절영도는, 조선시대에 국왕에게 바쳐진 절영마(快速馬)가 이곳에서 사육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말이 너무 빨라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뜻은 과장된 신화이자 국가적 상징이었다.
또한 영도에는 신선이 노닐던 섬이라는 설화도 전해진다. 지금의 신선동, 봉래동, 청학동이라는 동네 이름은 모두 이러한 신선 전승과 관련이 깊다. 실제로 ‘봉래’는 중국 신화 속 불로장생의 선인이 사는 이상향이며, ‘청학’은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파란 학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영도는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도 기운이 맑은 신령스러운 땅으로 여겨졌다.
문화유산으로는 태종대가 대표적이다. 해안절벽과 송림, 그리고 맑은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는 태종대는 조선 태종이 이곳을 유람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경승지로서의 가치와 함께 신선이 거닐던 명소라는 신화적 이미지도 함께 전해진다.
🔹 부산진구 – 철도와 시장, 피란민의 삶이 깃든 도시의 심장
부산진구는 부산의 중심 상권과 교통, 행정 기능이 집중된 지역이다. 문화유산보다는 현대 도시 구조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그 안에는 근현대사와 피란 문화, 도시 상업의 역사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대표적 명소로는 서면 거리, 부전시장, 부산시민공원이 있다. 서면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 중심 상권이 형성되면서 근대 상업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은 구도심 건물들과 시장, 골목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민공원은 한때 일본군과 미군의 기지가 있던 장소였으며, 지금은 재건축되어 시민의 쉼터이자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지역에서 전해지는 대표적인 전설은 많지 않으나, 가야동 일대에 전해지는 가야 유물 발견 전승은 삼국시대와 연결된다. 현재 가야고분군 추정지가 위치한 초읍동·가야동 일대에서는 땅을 파던 중 금관과 도자기류가 나왔다는 민간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이는 삼국시대 가야의 지배 영역이 이 지역까지 확장되었음을 암시하는 역사적 단서가 되기도 한다.
🔹 동래구 – 유구한 역사와 설화가 살아 숨 쉬는 전통의 고을
동래는 부산의 고도(古都)라 할 수 있으며, 수많은 문화유산과 함께 방대한 역사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표적인 유산은 동래읍성과 온천장, 그리고 복천동 고분군이다.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왜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동래부사 송상현이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한 장소로 유명하다. 성곽 일부는 지금도 복원되어 있으며, 매년 동래읍성 역사축제가 열려 당시의 전투를 재현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 설화는 “목 잘린 부사의 충절” 전승이다. 왜군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송상현 부사의 영혼이 성벽을 떠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는 후세에 충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온천장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왕실과 사대부들이 즐겨 찾은 유명한 온천지였으며, ‘온천에서 백학이 날아오른다’는 백학 설화가 남아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다리를 저는 노파가 온천물에 들어가자 신비한 흰 학이 나타나 치유의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로, 온천의 신령한 힘을 표현한 설화이다.
복천동 고분군은 삼국시대 동래 지역에 있었던 가야계 세력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지다. 이곳에는 실제로 많은 고분과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복이 샘솟는 마을(福泉)’이라는 동명의 유래와도 관련이 깊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고분에서 빛이 나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를 보고 이곳이 예로부터 신성한 땅임을 알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