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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시대] 바로크 시대의 거장들 : 헨델과 바흐

by hwanee7 2025. 3. 10.

바흐

 

 

제1장. 바흐와 헨델 – 같은 해 태어난 두 거장

 

1685년, 독일에서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두 명의 거장이 태어났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이다. 두 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바로크 음악의 정점을 찍었다. 바흐는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며 대위법과 푸가 형식을 발전시켰고, 헨델은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며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두 사람은 생애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바흐는 헨델을 만나기를 원했으나, 헨델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헨델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영국 왕실과 귀족들에게 후원을 받았고, 바흐는 독일의 교회 음악가로서 한정된 범위 내에서 활동했다.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도 차이를 보였다. 바흐는 철저한 구조와 복잡한 대위법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헨델은 극적 표현과 강한 감정이 담긴 오페라와 합창곡을 주로 작곡했다.

그러나 이들이 공유한 음악적 공통점도 있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인 장엄함과 화려한 장식음, 강렬한 감정 표현이 작품 전반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신앙심이 깊었으며, 종교적 영감을 바탕으로 위대한 교회 음악을 남겼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헨델의 메시아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종교 음악으로 평가받는다.

만약 두 사람이 만나 음악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면, 음악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고, 후대 음악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2장. 바흐의 가족 이야기 – 음악 가문에서 태어난 천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음악 가문에서 태어났다. 바흐 가문은 16세기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음악가를 배출한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바흐의 아버지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Johann Ambrosius Bach) 또한 뛰어난 음악가였으며, 바흐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바흐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Johann Christoph Bach)의 집에서 자라났다. 형은 바흐에게 음악을 가르쳤으며, 바흐는 밤마다 형이 숨겨둔 악보를 몰래 보며 음악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은 후에 그의 음악적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흐의 가문에서는 그의 자녀들도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아들 중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는 아버지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는 고전주의 음악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흐 가문은 단순한 음악 가문을 넘어, 유럽 음악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흐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나며 탁월한 음악성을 키웠고, 결국 바로크 음악의 완성을 이끌었다.

 

 

제3장. 바흐와 헨델의 죽음 – 같은 운명, 다른 평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1685년 같은 해에 태어나 서로 다른 음악적 길을 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년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모두 건강 악화를 겪었으며, 특히 실명이라는 운명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과 사후 평가는 크게 달랐다.

1. 바흐의 죽음 – 조용히 잊혀진 음악가

 

바흐는 생애 후반부에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다. 특히 눈병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실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영국의 안과 의사 존 테일러(John Taylor)가 바흐의 백내장 수술을 시도했으나, 그 수술은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바흐는 수술 후 더욱 쇠약해졌고, 1750년 7월경 갑작스럽게 시력이 돌아오는 듯한 순간을 경험했으나, 곧 심각한 뇌졸중 증세를 보이며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그해 7월 28일, 6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바흐는 사망 당시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그는 생전에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교회 음악가로서 활동했던 탓에, 사후에도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음악은 점차 잊혀졌고, 후손들은 생계를 위해 바흐의 악보를 팔거나 보관하지 못한 채 흩어져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바흐의 음악은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재공연하면서 바흐의 음악적 가치가 재평가되었고, 이후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오늘날 바흐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의 정점으로 평가되며,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다.

 

2. 헨델의 죽음 – 영광 속에서 떠난 음악가

 

헨델 역시 바흐와 마찬가지로 실명이라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1751년경부터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고, 바흐와 마찬가지로 존 테일러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 수술 역시 실패로 끝났고, 결국 헨델은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헨델은 실명 이후에도 작품을 수정하고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그는 자신의 대표작 *메시아(Messiah)*를 직접 지휘하며 공연을 지속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건강 악화로 인해 점차 힘을 잃었고, 1759년 4월 14일,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헨델의 죽음은 바흐와는 달리 큰 애도를 받았다. 그는 생전부터 영국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으며, 사후에도 그의 음악은 지속적으로 연주되었다. 헨델은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안장되었으며, 이는 영국에서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그는 영국 음악계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가 되었다.

 

3. 두 거장의 말년과 사후 평가 비교

 

바흐와 헨델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그들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사후 평가는 매우 달랐다. 바흐는 지역적인 명성을 지닌 교회 음악가로 생을 마쳤으며, 사후에는 오랜 기간 잊혀졌다. 반면, 헨델은 생전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고, 죽은 후에도 그의 작품은 꾸준히 연주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흐의 음악은 다시 조명받았고, 오늘날에는 헨델과 함께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실명을 겪었으며, 같은 의사의 수술을 받았다는 점도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그러나 헨델이 살아있는 동안 영광 속에서 생을 마감한 반면, 바흐는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위대함이 인정되었다.

만약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음악적 견해를 나누었다면, 바로크 음악의 흐름이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길을 걸으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고, 결국 음악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거장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