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서울 지명의 형성과 변천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서울의 지명은 단순한 행정구역 명칭을 넘어,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 문화를 반영한 상징적인 이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지명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으며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양(漢陽)’은 고려 말부터 조선의 수도로 사용되며 뿌리를 내렸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京城)’으로 불렸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이라는 고유어 명칭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는 한국어 고유어 지명 중 수도에 사용된 드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서울의 행정구역은 1943년 시 단위에서 구 단위로 확장되었고, 이후 25개 자치구로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동 이름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행정 조정의 결과가 아니라, 각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주민의 삶의 방식이 반영된 과정이기도 합니다.
특히 동 단위의 지명에는 조선시대 행정 구획, 자연 지형, 인물의 이름, 산업 활동, 교통 요지 등 다양한 요소가 어원에 반영되어 있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 줍니다.
2장. 한양, 남경, 경성, 서울 – 시대에 따라 바뀐 도시 이름
서울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각각의 명칭에는 그 시대가 서울에 부여한 역할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위례성(慰禮城)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였던 ‘위례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서울의 남쪽 지역인 송파 일대로 비정되며, 초기 국가의 수도였던 장소로 추정됩니다. - 한산주(漢山州), 남경(南京)
통일신라 시대에는 행정상 중심지로 한산주가 설치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개경 이남의 전략적 거점으로 ‘남경’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 한양(漢陽), 한성(漢城)
조선의 건국 이후, 서울은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수도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한성’으로도 불리게 됩니다. 한양은 ‘한강의 양쪽에 위치한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수도로서의 상징성과 지리적 특성이 모두 반영된 명칭입니다. - 경성(京城)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서울이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었으며, 일본어식 행정체계 속에서 사용된 이름입니다. 이 시기의 지명은 식민지 행정 편의에 따라 변경되거나 삭제된 경우도 많아, 전통적인 지명의 단절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 서울
광복 이후 1946년, 기존의 ‘경성’을 대신하여 ‘서울’이라는 순우리말 명칭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서울’은 고대어 ‘서라벌(新羅의 수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단순히 지명을 넘어서 한국의 수도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고유한 표현입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독특하게 순우리말로 수도명을 사용한 사례로 주목받습니다.
이처럼 서울의 이름은 시대마다 다른 정체성과 역할, 의미를 담고 변화해 왔으며, 현재 사용 중인 동네 이름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각 구와 동의 이름 분석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구성되고 변화해 왔는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장. 지명 속 한자어와 고유어의 의미
서울의 지명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 지역은 고유어 또는 고유어에서 유래한 변형된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지명이 역사적으로 한자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고유의 언어적 전통과 지역 정체성을 유지해 온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1. 한자어 지명의 구성 방식
서울의 대다수 지명은 한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 지형, 위치, 행정적 기능, 인물 이름, 상징성 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예를 들어:
- 종로(鐘路): ‘종(鐘)’은 큰 종, ‘로(路)’는 길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종각에서 종을 울리던 거리로서의 기능을 담고 있습니다.
- 강남(江南): ‘강(江)’은 강, ‘남(南)’은 남쪽을 뜻하며, 한강 남쪽 지역을 지칭합니다.
- 성북(城北): ‘성(城)’은 도성(한양성), ‘북(北)’은 그 북쪽이라는 의미입니다.
- 서초(瑞草): ‘서(瑞)’는 상서로움, ‘초(草)’는 풀로, 좋은 기운이 깃든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자어 지명은 의미가 명확하게 담겨 있어 지역의 특성이나 지리적 위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2. 고유어 및 토박이말 지명의 흔적
한자어와 달리, 고유어 지명은 한자로 표기되더라도 그 어원은 순수 한국어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지명은 발음과 표기법에서 특징이 나타나며, 종종 의미보다는 음차(소리 따라 쓰기) 중심으로 한자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 마포(麻浦): '마(麻)'는 삼(삼베)이나 대마를 뜻하고, '포(浦)'는 나루를 의미합니다. 실제로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삼베 장사와 나루터로 유명했던 것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원래 발음이나 사용된 언어는 고유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 압구정(狎鷗亭): 한자로는 ‘갈매기와 친해지는 정자’라는 뜻이나, 실제로는 조선의 한 명신이 세운 정자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후 지역명으로 굳어진 사례입니다.
- 도봉(道峰): ‘도(道)’는 길, ‘봉(峰)’은 봉우리로, 실제로는 ‘도봉산’이라는 지형지물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노원(蘆原)’이나 ‘공릉(孔陵)’ 등도 옛 고유 지명이나 전설, 지형을 바탕으로 한자화된 사례입니다.
3. 음차와 의미 왜곡의 사례
서울에는 일부 지역명이 원래 고유어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의미가 왜곡되거나 상실된 사례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 신촌(新村): '새 마을'이라는 의미이지만, 이 지역은 실제로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며, ‘신’은 단지 조선 후기 새로운 행정구역 편성에 따른 이름입니다.
- 잠실(蠶室): ‘누에를 기르던 방’이라는 뜻이나, 현대에는 이 의미보다는 단지 지역명을 뜻하는 용어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유어 기반 지명이 한자로 음차 되는 과정에서 원래 뜻이 모호해지고, 오히려 지형적·역사적 상징성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4. 현대 행정 지명의 통일화와 그 한계
서울의 동 이름 중 상당수는 1970~80년대 행정개편을 통해 동명을 단순화, 통합하면서 새롭게 생긴 이름도 많습니다. 이로 인해 고유한 전통 지명이 사라지고, 비슷한 이름이 중복되거나 의미가 퇴색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길’, ‘신정’, ‘신내’ 등 ‘신(新)’이 들어간 이름이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각각의 유래는 다름에도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
따라서 지명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단순한 한자 풀이보다는 지명의 어원과 지역 문화, 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