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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동작구 편

by hwanee7 2025. 4. 20.

서울의 남서쪽, 한강과 남산 사이에 위치한 동작구(銅雀區)는
한강 교통과 군사 요충지로서의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입니다.
‘동작’이라는 이름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과거 한양 도성과 강남을 잇는 동작진(銅雀津)에서 유래했으며,
도시화 이후에도 교통, 국방, 교육, 생활의 중심지로 꾸준히 변화해왔습니다.

 

 

 

✅ 동작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서울 동작구는 총 15개의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이름은 지역의 지형과 역사, 기능에 따라 유래되었다.
노량진1·2동은 조선시대 한강 나루터였던 ‘노량진(露梁津)’에서 유래하였다. ‘노량’은 ‘이슬 맺힌 들보’ 또는 물안개 낀 강변을 뜻하며, 한강 수운의 요지로 기능했다.

 

상도1~4동의 ‘상도(上道)’는 ‘윗길’이라는 뜻이다.
언덕과 고갯길이 많은 지형 특성에서 비롯된 이름이며, 과거부터 남부 지역으로 향하는 교통로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흑석동은 ‘검은 돌’이 많아 ‘흑석(黑石)’이라 불렸다.
한강변 흑암 지질이 드러나 있던 자연적 조건이 지명에 반영되었다.

 

사당1~5동은 ‘사당(祠堂)’, 즉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공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문중 사당이나 유림의 제사 문화가 지역 내 실제 존재했던 전통과 연결된다.

 

대방동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부대인 ‘대방분견대’가 주둔했던 장소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광복 후에도 해당 지명이 행정동으로 유지되었다.

 

신대방1·2동은 기존 대방동에서 도시 확장으로 분리된 지역이다.
‘신(新)’은 새롭게 개발된 주거지임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본동은 ‘본래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다.
노량진 일대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전통 취락지로 여겨진다.

 

 

 

🏯 동작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동작구 내 여러 지명은 단순한 행정단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작동은 ‘구리 동(銅)’과 ‘참새 작(雀)’의 조합으로, 색깔이 구릿빛을 띠는 바위가 많았던 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용산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한강 나루 ‘동작진(銅雀津)’이 위치한 교통 요지였다.

 

정금마을은 동작동 내 전통 마을 중 하나이다.
정씨 성을 가진 감사가 살았다는 설, 또는 포방터가 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능고개는 상도동과 봉천동 사이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 노승이 이곳을 후손에게 길지로 추천하였고, 실제로 자손들이 번창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아차고개는 노량진동에 위치한 고개로, 사육신의 처형 소식을 들은 선비가 “아차!” 하며 탄식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붙었다.
역사와 민간 설화가 결합된 대표적인 전통 지명이다.

 

동작충효길은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역사·문화 산책길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시작해 사육신묘, 용양봉저정, 한강공원 등을 잇는 구간이다. 이 길은 충절과 효심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단종 복위에 나섰던 사육신의 넋과 정조대왕의 부친 사도세자를 향한 효심이 함께 흐른다. 도시 속에서도 조용한 사색과 역사 체험이 가능한 길로, 한강 풍경과 함께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코스이다.

 

 

 

📚 동작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

동작구는 한강과 인접한 지리 특성상 교통·군사·충절의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노량진은 조선시대 서울과 남부 지방을 잇는 핵심 수로였으며, 나루터와 조운 창고가 밀집했던 곳이다.
근현대에는 노량진수산시장과 공시촌으로도 유명세를 이어왔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동작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가 추모 공간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모신 이곳은 국가 의식과 안보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육신묘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여섯 충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묘역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 충절의 상징으로, 현재까지도 추모와 교육의 장소로 존중받고 있다.

 

용양봉저정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 길에 들렀던 정자이다.
동작구의 한강 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왕실의 효심과 길 문화가 공존하는 역사 명소이다.

 

*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이야기 – 용양봉저정의 의미

용양봉저정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던 중 잠시 머물렀던 정자이다. ‘용이 날고 봉이 내려앉는다’는 뜻처럼, 왕의 효심과 왕권 회복의 의지가 담긴 상징적 장소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품은 정조는 이곳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명예를 되새겼다고 전해진다. 용양봉저정은 동작구의 역사적 자산이자 조선왕조의 비극과 회복을 잇는 공간이다.

 

꿈과 생존이 교차하는 청년 공간 노량진 공시촌 

노량진은 한때 ‘대한민국 수험생의 수도’로 불릴 만큼 공무원 준비생들이 몰리는 공시촌으로 유명했다. 좁은 고시원과 컵밥, 학원가가 상징이던 이곳은 점차 학령인구 감소와 시험 제도 변화로 쇠퇴를 맞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청년 창업, 공유주거, 문화시설이 들어서며 전환의 기로에 섰다. 여전히 꿈을 좇는 공간이지만, 더 이상 ‘시험만을 위한 도시’가 아닌, 생존과 가능성이 공존하는 청년 도심으로 변화 중이다.

 

이처럼 동작구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조선의 수로와 충절, 현대의 안보와 교육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역사 도시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