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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마포구 편

by hwanee7 2025. 4. 22.

 

서울의 중심부와 한강을 잇는 핵심 위치에 자리한 마포구(麻浦區)는 오랜 세월 동안 서울 서북부의 관문이자, 수운과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 기능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강을 통한 조운과 상업이 활발했으며, 근대에는 철도와 공업의 발달로 도시화가 시작되었고, 오늘날에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이자 디지털 산업지구로도 성장하고 있다. 마포는 ‘삼베 마(麻)’와 ‘포구 포(浦)’의 조합으로, 조선시대 한강변의 삼베 시장이 발달했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처럼 마포의 지명과 행정동명,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서울의 도시사와 지역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 마포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현재 마포구는 총 16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동은 역사적 행정 구역, 지리적 위치, 지형적 특성에 따라 명명되었다.


공덕동(孔德洞)은 조선시대 한성부 서부 용산방 공덕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공자(孔子)의 덕(德)’을 본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현동(阿峴洞)은 한자로 ‘아(阿)’는 작은 언덕을, ‘현(峴)’은 고갯길을 뜻하는 말로, 실제로 이 지역은 남산과 홍제천 사이의 낮은 고개 지역으로, 지형을 반영한 전통적인 지명이다.


도화동(桃花洞)은 봄철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이름에 담겨 있다.


용강동(龍江洞)은 ‘용이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한강과 인접한 지리와 풍수적 상징이 결합된 지명이다.


대흥동(大興洞)은 ‘크게 일어선다’는 의미로, 일제강점기 이후 신흥 주거지역으로 조성되며 발전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염리동(鹽里洞)은 조선시대 소금창고가 있던 곳에서 비롯되었으며, 실제로 한강 수운을 통해 유입된 소금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마을이다.


신수동(新水洞)은 ‘새로운 물’이라는 뜻으로, 한강과 지천이 만나는 지역으로서 수자원이 풍부한 환경을 반영한 이름이다.


서강동(西江洞)은 ‘서쪽의 강’이라는 의미로, 서울 도심 기준으로 한강의 서편에 위치한 점에서 유래되었다.


서교동(西橋洞)은 ‘서쪽 다리’라는 뜻이며, 마포대교 및 서강대교 인근 교량과 관련한 지형적 명칭이다.


합정동(合井洞)은 ‘합쳐진 우물’이라는 의미로, 과거 공동 우물 두 개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마을 전설이 이름에 남아 있다.


망원동(望遠洞)은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조선시대에는 강을 바라보는 누각인 망원정(望遠亭)이 위치해 있었다.


연남동(延南洞)은 연희동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되며 1975년 새롭게 명명된 동이다.


성산1·2동(城山洞)은 ‘성처럼 견고한 산’이라는 의미로, 홍제천과 월드컵경기장 사이의 구릉지대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상암동(上岩洞)은 ‘위쪽에 있는 바위 마을’이라는 뜻으로, 과거 바위가 많은 언덕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 마포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마포구의 여러 지명은 단순히 행정 구역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지형, 풍수 사상, 민간의 생활사,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다.


망원동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이 지역에 망원정을 짓고 사방을 조망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지명은 ‘멀리 바라보다’는 뜻 그대로, 한강을 따라 시야가 트인 고지대의 특성과 아름다운 경관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합정동은 한강변 마을에서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개의 우물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주민 공동체의 협력과 상생의 정신이 깃든 이름으로 불린다.


서강동은 이름 그대로 서울 기준으로 한강의 서쪽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배들이 드나들던 수운 중심지이자, 강변 문화를 꽃피운 지역이었다.


상암동은 지금은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대표되는 첨단산업단지 이미지가 강하지만, 본래는 높은 암석지대를 배경으로 한 자연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연남동은 과거 연희동에서 분리되어 ‘연희동 남쪽에 위치한 동네’라는 의미로 명명된 지명으로, 현재는 홍대입구역과 연남동카페거리 등으로 대표되는 젊은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 마포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

 

 

1. 마포나루와 조운(水運)의 중심지

조선시대 마포 일대는 세곡(稅穀)을 운반하던 한강 수운의 거점으로, 전국에서 온 쌀·소금·목재 등이 한강을 통해 이곳 마포나루에 집결했다.
이로 인해 마포는 조운의 최종 집하장, 시장, 창고가 밀집된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당시 “한양의 배는 마포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조선 경제에서 마포가 차지한 위상은 매우 컸다.

 

2. 망원정과 세종대왕의 휴식처

망원동에는 조선 세종대왕이 정자를 짓고 여름철 더위를 피해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망원정(望遠亭)이 있었다.
한강 너머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해, 강의 풍경을 즐기기 위한 왕실의 별서로 사용되었으며, 이 지명도 이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망원정은 이후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소실되었으나, 한강변 경관 명소로서의 전통은 남아 있다.

 

3. 염리동의 소금 창고 이야기

염리동은 지명 그대로 ‘소금 마을’이라는 뜻을 지니며, 조선 후기에는 한강을 따라 운반된 소금을 저장하던 염창(鹽倉)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국가의 조세 물품 중 하나인 소금의 유통과 보관을 위한 중요 창고 지역이었고, 마을 주민들도 이에 종사한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염리초등학교 등 당시의 명칭이 남아 있어 마을의 뿌리를 보여준다.

 

4. 경의선과 마포역 – 철도의 시대 개막

1906년 개통된 경의선 철도는 마포구를 서울 서북부 교통망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마포역은 한때 경의선의 서울 기점으로, 마포나루와 연결되는 육상 교통의 시발점이자 종점이었다.
물류와 상인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마포는 수운 중심에서 철도 산업 중심지로 급속히 전환된다.

 

5. 홍대 앞 예술가 거리의 탄생

1990년대 후반부터 홍익대학교 미대 출신 예술가들과 청년 문화인들이 이 지역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마포구 홍대입구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 중심지로 부상한다.
홍대 거리공연, 인디음악, 언더그라운드 전시, 클럽 문화 등은 대한민국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도 연남동·서교동 일대는 대표적인 창작자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6. 상암DMC –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심장

2000년대 초, 마포구 상암동 일대는 서울시의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조성 계획에 따라 첨단 미디어·IT 기업들이 입주하는 복합산업지구로 개발되었다.
KBS·MBC·SBS 등 방송사를 비롯해 CJ ENM, YTN, 아리랑TV 등의 본사 또는 스튜디오가 이 지역에 들어서며, 상암은 대한민국 영상·콘텐츠 산업의 심장으로 거듭났다.
과거 암석 언덕이었던 '상암(上岩)'이 디지털 한류를 발신하는 글로벌 거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