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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강동구 편

by hwanee7 2025. 4. 24.

서울특별시의 동남부, 한강 남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강동구는 서울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선사 유적이 발견된 지역이자, 조선시대까지 주요 교통로와 농경지로 번성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현대적인 도시로 발전했지만, 동시에 한성백제의 흔적, 조선 시대의 옛길, 고덕동의 선비 마을, 암사동의 선사문화유적 등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축적된 고장이다.

 

 

✅ 강동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강동구는 총 8개 법정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행정동이 구성되어 있다.
각 동의 이름은 대부분 자연지형, 인물, 역사적 배경에서 유래되었으며, 지역 정체성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암사동은 ‘바위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신석기 시대 선사 주거지 유적이 발견되어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화층으로 평가받는다. 암사동 유적지는 단순한 고고학적 가치를 넘어, 대한민국 선사시대 교육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천호동은 ‘하늘을 향한 큰 호수’ 또는 ‘하늘에 이르는 큰 개울’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하고 평탄한 지형 덕분에 농업이 발달하였으며, 20세기 중반 이후 도시 개발과 함께 중심 상권으로 변모하였다.

 

성내동은 말 그대로 ‘성(城) 안의 마을’을 의미한다. 과거 백제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위례성과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방어 시설 내 주민 생활구역으로 기능했던 전통을 품고 있다.

 

길동은 '길목에 있는 마을'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시대부터 양재천과 중랑천 사이의 교통 요지로 번창한 지역이다. 오늘날에도 지하철과 도로망이 잘 발달해 강남 접근성이 높은 주거지로 인기 있다.

 

둔촌동은 고려 말의 충신 이집(李集)이 은거하던 곳으로, 그의 호 ‘둔촌’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집은 절개와 학문으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며, 둔촌동은 오랫동안 유교적 전통이 살아 있는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명일동은 ‘밝은 내일’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1960년대 도시 확장과 함께 희망적인 지명을 붙이려는 의도에서 정해졌다. 단지 이름이 아니라, 도시계획과 함께 만들어진 ‘이상향적 지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고덕동은 ‘높은 덕을 가진 마을’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과거 선비와 유학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전통적 유교 마을이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지만, 고덕산과 함께 여전히 조용하고 정제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상일동, 강일동은 각각 ‘위쪽에 있는 일동’, ‘한강변에 있는 일동’이라는 의미에서 지명화되었다. 이들 지역은 신도시 개발 이전에는 비교적 외곽에 위치한 농경지였으며, 현재는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 개발을 통해 서울의 미래형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 중이다.

 

 

 

🏯 강동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강동구에는 고유한 이야기를 품은 지명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구천면로(舊川面路)는 조선시대부터 한양과 광주(지금의 하남시)를 연결하던 교통로로, 예부터 ‘구천면’이라 불렸던 지역을 따라 조성된 옛길이다. 현대에도 지역 내 중심도로로 기능하고 있으며, 길 이름 자체가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암사선사유적지는 한국 신석기 문화의 상징적 공간이다. 1925년 홍수 이후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빗살무늬 토기, 움집터, 수렵·채집 도구 등이 발굴되었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확인된 최초의 선사문화 유적지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정비 중이다.

 

일자산(一字山)은 산 능선이 일자 형태로 뻗어 있는 지형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현재는 서울둘레길의 일부로, 시민들에게 자연과 역사 체험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산책길이 되었다.

 

고덕산은 고덕동과 함께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정신을 수양하던 장소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이후에도 기도처와 정자가 세워졌던 명소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지역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 강동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

 

강동구는 선사시대부터 한성백제,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 동부의 중심 문화지대로 기능해왔다.

 

신석기 시대에는 암사동 일대에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선사인들이 거주하며, 농경과 채집, 수렵을 병행하던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백제 시기에는 하남 위례성이 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성내동, 천호동, 풍납동까지 연결되는 한강 유역은 백제 초기 왕도(王都)의 배후지로 기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구천면과 하남지역을 연결하는 내륙 교통로와 농업지대로 발전하였고, 한강 수운과 육상 교통이 만나는 지역으로 행정적, 경제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대에는 1979년 강남구에서 분구되어 ‘강동구’로 승격되었고, 고덕지구·암사지구·상일동 신도시 개발 등으로 대규모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전통과 자연을 보존하며, 환경친화적 주거지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이처럼 강동구는 서울의 가장 오래된 과거와 미래형 도시가 공존하는 곳이다.
행정동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와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 하나하나가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수천 년의 역사를 증명해준다.

 

 

 

* 참조 : 구천면로(舊川面路)의 역사적 의의

 

1. 조선시대 한양과 하남을 잇는 주요 내륙 교통로

  • ‘구천면’은 조선시대 현재의 강동구 일대를 관할하던 행정 구역 중 하나로, 하남의 일부 지역까지 포괄했습니다.
  • 구천면로는 이 지역에서 한양 도성으로 드나드는 가장 직선적인 길목이었으며, 왕래가 잦은 생활로이자 상업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특히 서울 동남부와 경기도 광주(하남 포함)를 연결하는 내륙 간선로로, 인근 농산물과 생필품의 운송, 관아 간 연락이 이뤄지던 교통·경제적 동맥이었습니다.

 

2. 마을의 중심을 관통하는 생활로

  • 이 길은 단순한 왕래용 통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생활이 모이는 마을 중심로이기도 했습니다.
  • 과거 이 도로를 따라 장터, 주막, 우물, 서당, 나루터로 가는 길이 형성되어 지역 공동체의 삶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공간이었고, 오늘날에도 길을 따라 상업지구와 전통시장이 분포합니다.
  • 현재 강동구청, 강동경찰서, 성내시장 등이 이 길을 따라 위치하고 있어, 전통적인 마을 중심축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3. 근현대 도시화 과정에서도 보존된 옛길

  • 1970~80년대 이후 강동구 일대가 본격적으로 도시화되면서 많은 옛길이 소실되거나 도로망 속에 통합되었지만, 구천면로는 그 이름과 길의 흐름이 비교적 온전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 특히 “구천면”이라는 지명 자체는 현재 행정구역에서 사라졌지만, 도로명에 옛 지명을 남겨 지역 정체성과 역사성을 보존하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 도로명주소 체계로 전환된 이후에도 ‘구천면로’는 그대로 유지되어, 서울에서 역사 지명을 간직한 몇 안 되는 주요 도로명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4. 지역 정체성을 계승하는 문화적 자산

  • 구천면로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이름이 아니라, 현재 강동구민들이 일상에서 역사와 연결될 수 있는 실질적 문화 자산입니다.
  • 걷거나 운전하며 지나치는 도로의 이름 속에 이 지역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공간이며, 강과 들을 끼고 문명이 이어져 온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 향후 강동구의 도시재생 또는 역사문화 콘텐츠 사업에서 이 길을 중심으로 한 도보 탐방로, 유래 표지판 설치, 역사 지도 제작 등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구천면로는 ‘옛길’이자 ‘살아있는 도로’로, 서울 도시 공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역사경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