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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서대문구 편

by hwanee7 2025. 4. 25.

 

서울특별시의 서쪽에 자리 잡은 서대문구(西大門區)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서쪽 대문인 '돈의문(敦義門)'에서 이름을 따온 지역으로, 전통과 근대가 함께 공존하는 서울의 역사문화 중심지입니다.
서대문은 본래 한양 도성의 4대문 중 하나로서, 의로움을 지키는 관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록 1915년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어 오늘날 그 실체는 사라졌지만, '서대문'이라는 지명은 서울 서부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도 서울 시민들의 정서 속에 역사적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 서대문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서대문구는 현재 14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동명은 그 지형, 전통 마을의 이름, 인문적 상징 등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래는 대표적인 동들의 어원 및 특징입니다.

 

충현동(忠峴洞)은 ‘충정’과 ‘북아현’의 일부가 합쳐진 이름으로, '충정'은 충성과 정의를, ‘현’은 고갯마루를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관아와 한성 감옥, 병원 등이 밀집했던 곳으로, 근대 행정의 중심 역할을 하던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천연동(天然洞)은 이름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닌 동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냉천동, 옥천동, 현저동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지명에서 풍기는 인상처럼, 골짜기와 샘물이 많고, 산자락 아래 마을이 형성된 풍요로운 지형이었습니다.

 

북아현동(北阿峴洞)은 '아현(阿峴)'이라는 지명이 ‘아름다운 고갯길’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하였고, 그 북쪽에 위치하여 ‘북아현’이 되었습니다. 아현고개는 한양에서 서북 방면으로 나가는 관문 중 하나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신촌동(新村洞)은 말 그대로 ‘새 마을’을 의미합니다. 개화기 이후 철도와 상권이 발달하면서 이 일대에 신흥 정착지가 형성되었고, 자연스럽게 ‘신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가 위치한 교육·문화 중심지입니다.

 

연희동(延禧洞)은 ‘기쁨이 길게 이어진다’는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고급 주택지로 개발되며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전통이 살아 있는 중산층 문화 주거지의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홍제동(弘濟洞)은 ‘널리 구제하다’는 뜻으로, ‘도움을 베푸는 큰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과거에는 홍제천이 흐르며 벼농사가 번성하였고, 이 지역은 서민 주거지로 발전하면서 서울 서쪽의 일상생활 거점이 되었습니다.

 

홍은동(弘恩洞)은 '크게 은혜를 베푸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홍제동과 함께 고유의 공동체와 전통이 강한 동네였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난민촌과 민간 마을이 조성되었고, 이후 도시화 속에서도 공동체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남가좌동, 북가좌동(加佐洞)은 가재가 많았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가좌’에서, 남쪽과 북쪽의 위치에 따라 각각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원래는 한강변 습지와 연못이 많았던 지역으로, 근대 이후 도시 주거지로 개발되었습니다.

 

 

 

 

🏯 서대문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서대문구에는 행정동 외에도 역사와 전설이 깃든 지역 이름들이 많습니다.

 

돈의문(敦義門)은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세워진 한양 도성 서쪽의 대문으로, '의로움을 돈독히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철거되었지만, 이름은 서대문구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서울시에서는 복원 계획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무악재(毋岳齋)는 한양에서 서쪽 지방으로 통하는 고갯길로, ‘산이 없는 고개’라는 뜻을 지닙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과 장사꾼들이 넘나들던 중요한 통로로, ‘한양 서문의 길’이라는 별칭도 있었습니다.

 

서소문(西小門)은 ‘서쪽의 작은 문’으로, 조선 한양 도성의 4소문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기 때 순교자들의 처형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서소문 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순교자들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가재울은 지금의 남가좌동·북가좌동 일대이며, 가재가 서식하던 하천 주변 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산업화 이전까지도 자연 하천과 습지가 넓게 퍼져 있었고, 서울 변두리 전통 농촌의 모습이 남아 있었던 곳입니다.

 

 

 

 

📚 서대문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

 

서대문구는 조선시대 행정 중심과 교통 요지, 일제강점기 저항의 상징, 현대의 교육·문화 중심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장소로, 유관순, 안창호, 강우규 등을 포함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렀습니다. 현재는 ‘서대문독립공원’과 함께 시민 교육과 역사 성찰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봉원사(奉元寺)는 신라 말기 창건된 고찰로, 조선시대에는 왕실 후원을 받았던 중요한 사찰입니다. 이화여대 근처 숲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도 서울 속 자연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촌 지역은 개화기 이후 철도와 전차 노선의 개통과 함께 새로운 도시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주거지였던 이곳은 광복 후 젊음과 자유,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홍대, 연남동과 함께 서울 대표 문화지구로 인식됩니다.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는 한국 근대 교육의 산실로, 교육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기독교 선교와 함께 설립된 이들 학교는 서대문구를 ‘교육의 요람’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서대문구는 단순히 행정구역으로서가 아니라, 서울의 역사 흐름을 대표하는 도시적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명의 어원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은 곧, 수백 년 간 쌓여온 서울 사람들의 기억과 도시의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창이 됩니다.

 

 

* 부록

 

🇰🇷 서대문구 독립운동 유적 탐방 코스

“자유를 위한 발자취를 따라 걷다”

 

1.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위치: 서대문구 통일로 251
  • 설명:
    1908년 일제가 세운 감옥으로, 유관순 열사, 안창호 선생, 강우규 의사 등이 수감되었던 항일 저항의 현장입니다.
    일제의 고문과 수감 생활을 재현한 전시실, 추모비, 옥사(옥중 방), 사형장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죽음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교육적·역사적 명소입니다.
  • 탐방 포인트: 제10옥사(유관순 열사), 사형장, 추모의 뜰

2. 서대문독립공원

  • 위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
  • 설명:
    형무소 바로 앞에 조성된 독립운동가 추모공원입니다.
    독립문, 순국선열추념탑, 순국선열위패봉안실이 있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헌화와 묵념을 하며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탐방 포인트: 순국선열위패봉안실, 독립문, 무궁화 정원

3. 독립문(獨立門)

  • 위치: 독립공원 내
  • 설명:
    1897년 독립협회와 서재필 박사가 주도해 건립한 문으로,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국임을 선언한 상징적 건축물입니다.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 만든 이 문은, '속국에서 독립국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민권의 상징으로, 독립운동 정신을 상기시키는 유산입니다.
  • 탐방 포인트: 독립문 석문, 주변 설명 표지판

4. 서소문 역사공원 (서소문 순교성지)

  • 위치: 중림동과 가까움 (도보 이동 가능)
  • 설명:
    조선 말기부터 천주교 순교자와 개화기 정치범의 처형지로 사용되었던 장소입니다.
    이후 개화·민권 운동가와 항일운동가들 역시 이곳에서 처형되었으며,
    ‘처형의 언덕’이라 불리며 많은 피가 흐른 서울의 또 다른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금은 공원과 순교기념관으로 조성되어, 역사적 슬픔과 인권 정신을 함께 돌아보게 합니다.

5. 연세대학교 백양로 – 3.1운동 출발지

  • 위치: 연세대학교 교정
  • 설명: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는 3.1운동 당시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 중 하나입니다.
    1919년 3월 1일, 이화학당(현 이화여대)과 함께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며 만세 운동을 주도했으며,
    많은 학생들이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교육과 저항의 공간이 겹쳐지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 탐방 코스 제안 (도보 기준 약 2.5시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서대문독립공원 → 독립문 → 서소문 역사공원(버스 1정거장 또는 도보 15분) → 연세대학교 백양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