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종로구 편

by hwanee7 2025. 4. 9.

서울의 중심이자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종로구는 조선왕조 500년의 도읍지 한양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도성(한성부) 중심 지역이었기에, 궁궐, 종묘, 사직, 종각 등 다양한 유적과 함께, 지명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종로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청운효자동은 본래 ‘청운동’과 ‘효자동’이 각각 존재했으나,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하나의 동이 되었습니다. ‘청운(靑雲)’은 푸른 구름이라는 뜻으로, 고결함과 높은 뜻을 품은 선비의 이상을 상징하며, 경복궁 서쪽의 서촌 지역에 위치해 전통적인 정취가 살아 있는 동네입니다. ‘효자동(孝子洞)’은 이름 그대로 효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네로, 조선시대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 살았던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직동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社稷壇)이 있었던 지역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경복궁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왕도 정치의 이념과 국가 제례가 살아 숨 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청동은 ‘세 가지 맑음’이라는 뜻으로, 맑은 물, 맑은 바람, 밝은 달이라는 이상향을 담고 있는 지명입니다. 청빈한 선비들이 모여 살았던 조선시대 주거지로, 지금도 고즈넉한 골목과 한옥이 어우러진 전통문화 보존 지역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부암동은 조선시대 ‘부아현(釜峴)’이라 불리던 곳으로, 솥처럼 생긴 고개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후 바위가 많은 산자락이라는 의미의 ‘암(岩)’자가 더해져 부암동이 되었습니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고지대로, 예로부터 풍경이 아름다워 시인과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곳입니다.

 

평창동은 서울 북부 산지에 위치하면서도, 산속에 평지가 펼쳐진 곳이라는 점에서 ‘평창(平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고급 주택지로 개발되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무악동은 조선시대 도성의 서쪽 관문인 무악재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무악(巫嶽)’은 ‘무속 신앙의 산’이라는 뜻으로, 조선 초기에 도성 터를 정할 때 신령한 기운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로 간주되었던 곳입니다.

 

교남동은 ‘교외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경복궁의 남쪽 바깥 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외곽 지역이었으나, 경복궁의 영향권 내에 있는 만큼 정치적·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었습니다.

 

가회동은 ‘함께 모여 사는 마을’ 또는 ‘좋은 마을’이라는 의미로, 북촌 한옥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들이 많이 살았던 전통적인 주거지로서, 지금도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보존구역 중 하나입니다.

 

종로1·2·3·4가동종로5·6가동은 ‘종로(鐘路)’라는 도로명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종로는 조선시대 도심의 중심 거리로, 보신각의 종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길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상업, 문화, 행정의 중심지로서 지금까지도 서울의 상징적인 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화동은 ‘이화(梨花)’라는 말 그대로 ‘배꽃’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았다고 하며, 봄이 되면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이름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혜화동은 ‘은혜롭게 변화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도성의 북동쪽 방어 거점 중 하나였던 곳입니다. 행정 명칭으로는 순수한 한자적 미덕이 강조되었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요충지의 성격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창신동은 ‘창(昌)’은 번영을, ‘신(信)’은 믿음을 뜻하는데, 이는 비교적 근대 행정 구획 개편 과정에서 새롭게 지어진 이름일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에는 봉제 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숭인동은 ‘숭인(崇仁)’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어질음을 숭상한다’는 유교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동망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던 지역으로, 행정적 명칭 외에도 역사적 장소로서의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 종로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종각(보신각)은 조선시대 서울의 시간을 알리는 중요한 시설이었던 보신각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종각’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종을 치는 누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에는 매일 새벽과 저녁, 정해진 시각에 종을 쳐서 시보를 알리고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렸습니다. 오늘날 종로라는 도로명도 이 종각에서부터 시작된 길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현재는 해마다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리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光)’은 빛, ‘화(化)’는 변화, ‘문(門)’은 문을 뜻하여, 밝은 문, 또는 문명을 밝히는 문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선 건국 후, 정도전이 명명했다고 전해지며, 이 문은 단순한 궁궐의 입구가 아닌 조선 왕조의 이상적 정치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으나 복원되었고, 현재는 광화문광장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은 조선시대 경복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도로 축선상에 만들어진 중요한 지점입니다. ‘십자’는 도로가 교차하는 ‘십자 모양’의 구조를 의미하며, ‘각(閣)’은 누각을 뜻합니다. 이들은 도심의 구조적 상징이자 왕궁과 제례 공간을 연결하는 신성한 축을 나타냅니다. 현재는 동십자각만 남아 있으며,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습니다.

 

인사동은 본래 ‘관인방(官印坊)’이라 불리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관청에서 사용하던 인장(도장)을 제작하거나 관리하던 방(坊)**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인사동(仁寺洞)’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어진 절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현재의 인사동은 전통문화 거리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관리들이 거주하던 고급 주택지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곳입니다.

 

서촌북촌은 각각 경복궁을 기준으로 서쪽과 북쪽에 위치한 마을을 의미하는 지명입니다. ‘북촌’은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의 가회동, 계동, 삼청동 일대를 가리키며, 조선시대 고위 관료와 양반들이 거주하던 한옥 주택지가 집중된 지역입니다. 이에 반해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즉 청운동, 효자동, 옥인동 일대로, 상대적으로 서민과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지역 모두 현재는 전통 한옥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지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망봉은 현재의 숭인동 인근에 있던 봉우리 이름으로, 조선시대 형장이 설치되었던 사형 집행 장소로 유명합니다. 죄인의 형이 집행된 후, 머리를 장대에 걸어 백성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이 봉우리에 전시했다고 전해지며, 그로 인해 ‘동망봉(東望峯)’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망(望)’은 ‘바라보다’라는 뜻을 가지므로, ‘도성을 바라보는 봉우리’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지명만 전해지고 있으며, 장소는 변화되었습니다.

 

 

 

✨ 종로구 지명의 특징 요약

 

분류 내용

역사성 조선시대 도성 중심으로, 왕궁과 제례 공간을 중심으로 지명 형성
유교 문화 효자, 어짐, 은혜 등 유교적 덕목을 담은 이름 다수 (효자동, 숭인동 등)
자연 경관 산과 고개, 바위 등을 반영한 이름 다수 (부암동, 무악동 등)
문화 공간 종각, 인사동, 광화문 등 이름 자체가 지역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