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9부. 경기도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성남시(2)

by hwanee7 2025. 5. 9.

 

 

 

🏯 지명 유래 및 이야기 

 

‘성남(城南)’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성의 남쪽’을 의미한다. 여기서 ‘성’은 조선시대 국방과 행정의 핵심 거점이었던 남한산성을 가리키며, 성남이라는 도시는 바로 이 산성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일대를 ‘성나미’ 또는 ‘성내미’라고 불렀는데, 이는 ‘성 너머에 있는 마을’, 혹은 ‘성 바깥쪽’이라는 뜻의 방언 표현이다. 이러한 명칭은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한 공간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리적 위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려지던 이름이 시간이 흐르면서 한자식 표현으로 정착된 것이다.

이후 근대에 들어 행정구역 개편과 도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성남(城南)’이라는 명칭이 공식 지명으로 채택되었다. 특히 성남은 한양과 가까우면서도 성곽 외부에 위치한 데다, 산성과 연계된 방어선 역할을 하던 중요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군사적·지리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었다.

현대에 들어서 성남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위치 설명을 넘어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 정체성을 함축한 상징적 지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한산성과 성남이라는 도시의 관계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며, 도시의 기원과 발전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 역사적 이야기 

 

성남시는 계획도시로서 대한민국 현대 도시개발사의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한다. 본래 성남 지역은 광주군 중부면에 속한 농촌 지역으로, 1960년대까지는 논밭과 산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서울의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판자촌 철거민과 도시 저소득층의 이주를 수용하기 위해 정부가 ‘광주대단지’라는 대규모 이주단지를 조성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 대단지는 성남시의 도시적 기초가 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성남시로 승격되며 경기도 최초의 기초자치단체로 출범했다. 이후 1990년대 초 분당신도시 개발로 도시 규모와 기능이 급격히 확장되었고, IT 산업 중심지인 판교가 조성되며 첨단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성남의 역사는 단순한 행정구역 변화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도시계획과 주거정책, 사회적 갈등의 축소판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 문화유산 및 명소

 

성남시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다양한 문화유산과 명소가 도시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남한산성이 있다.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대에 외침을 막기 위해 축성된 산성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해 항전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아름다운 성곽과 조망 좋은 능선길은 등산객은 물론 역사 탐방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다른 명소로는 봉국사 대광명전이 있다. 17세기 후반에 조성된 이 불전은 조선 후기 불교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며, 성남시 최초의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불화 등 귀중한 불교 예술품이 보존되어 있다.

 

현대 도시 성남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다양하다. 성남아트센터는 공연예술의 중심지로서 오페라, 콘서트, 연극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상시 개최된다. 또한, 판교에는 IT기업들이 모여 있는 테크노밸리가 조성되어 있고, 미래 산업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성남은 역사적 가치와 도시 발전이 동시에 이뤄지는 문화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 설화·전설 모음 

 

성남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존재하며, 이는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적 기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전설 중 하나는 이매동 이무기 이야기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과거 이매동 탄천 근처 방죽에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살았고, 마침내 용으로 승천하려는 순간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막고 죽였다고 한다. 그 이무기의 넋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냈더니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자라났고, 이를 기리며 ‘이매동(二梅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로는 성내미 마을의 토성 전설이 있다. 조선 세종 시대, 헌릉의 지맥을 보호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달래내 고개에 토성이 쌓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로 인해 마을을 '성내미(城內尾)'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도 판교공원 일대에서는 해마다 ‘천재봉행’이라 불리는 제사가 열려 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성남 일대에는 지명에 얽힌 작은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며, 현대적인 도시 이미지 이면에 깊은 문화적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설화는 단순한 민담을 넘어, 지역민의 삶의 철학과 자연에 대한 인식, 신앙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정신문화 유산으로서 보존할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