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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중구 편

by hwanee7 2025. 4. 10.

 

 

서울 중구는 현재의 서울 중심업무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에 해당하는 곳으로, 서울역과 명동, 을지로, 충무로, 동대문 등 굵직한 지명들이 위치한 자치구입니다. 대부분의 지명이 조선시대 또는 근현대기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으며, 상권, 행정, 교통, 군사, 문화 중심지로서 발전한 과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중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소공동은 본래 ‘소의 궁궐(小宮)’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덕수궁(경운궁)과 관련된 별궁이 있었던 곳으로, 왕실의 부속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공(小宮)’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회현동은 ‘회현방(會賢坊)’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회(會)’는 모이다, ‘현(賢)’은 어진 사람을 뜻하여, **어진 이들이 모이는 방(坊)**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지식인과 상류층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습니다.

 

명동은 ‘밝은 동네’라는 의미의 순우리말로 해석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조선시대 ‘명례방(明禮坊)’이라는 행정구역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명례방은 ‘밝고 예스러운 방(坊)’이라는 뜻이며, 근대 이후 발음과 표기가 바뀌며 ‘명동’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대표적인 쇼핑 거리이자,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서울의 상징적 공간입니다.

 

필동은 한자로 ‘붓 필(筆)’ 자를 써서, ‘붓과 관련된 동네’로 해석되지만, 실제 유래는 ‘필운대(弼雲臺)’라는 경치 좋은 장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거주하며 글을 짓고 연구하던 지역이라 문학적 이미지도 강합니다.

 

장충동은 ‘장수와 충성’을 뜻하는 이름으로, 조선시대나 대한제국 시절에는 군사훈련장 및 궁중 행렬의 이동 경로로 사용되던 지역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고급 주택지로 개발되었으며, 장충단공원과 장충체육관으로 상징됩니다.

 

광희동은 조선시대 광희방(光熙坊)에서 유래하였으며, ‘빛나고 화평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구한말 이후 산업화되면서 시장, 공장 등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현대에는 의료기기 상가와 방산시장이 유명합니다.

 

을지로동은 근대에 생긴 이름으로, 을지문덕 장군의 충절을 기려 명명된 거리입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저자거리’로 불리던 상권 중심지였으며, 20세기 중후반 서울의 전기·인쇄·조명 산업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신당동은 조선시대 무속 신앙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신(神)’은 신령, ‘당(堂)’은 사당을 의미하며, 실제로 무속인이 신당을 운영하던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신당동 떡볶이 타운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다산동은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호: 다산)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서울 행정구역 개편 시 기존 황학동 일부를 분리해 다산동으로 이름 지었으며, 근래에는 재개발 및 다산로 일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약수동은 이름 그대로 ‘약수가 솟았던 동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에 약효가 있다고 전해지는 샘이 있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도 약수터가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약수역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상권이 어우러진 지역입니다.

 

청구동은 ‘푸른 언덕’이라는 순우리말 느낌의 지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960년대 이후 새롭게 형성된 주거지로, 행정적 명칭에 따라 부여된 이름입니다. ‘청(靑)’은 푸름, ‘구(丘)’는 언덕을 뜻해 상징적 의미가 강한 명칭입니다.

 

황학동은 ‘황학정(黃鶴亭)’이라는 조선시대 활터(국궁장)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황학’은 ‘노란 학’을 뜻하며, 중국 전설에서 장수와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새입니다. 현재는 서울의 대표적인 벼룩시장인 황학동 고물상 거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중림동은 ‘중앙의 숲’ 또는 ‘마을 중심의 숲’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목재 조달지 역할을 했던 지역입니다. 한때는 도심과 떨어진 변두리였지만, 서울역세권과 가까워지며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만리동은 ‘만 리를 내다보는 언덕’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시야가 넓고, 한양 도성의 바깥 지역에 자리했던 만큼, 한양을 바라보며 유배된 인물들이 머물렀던 지역이라는 전설도 남아 있습니다.

 

버티고개는 서울 중구 신당동과 남산 자락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서울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명은 한자로 표기된 ‘伐致峴(벌치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발음이 변화되면서 ‘버티고개’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벌치’는 나무를 베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이 고개를 넘기 위해 울창한 산림을 베고 길을 냈던 일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즉, ‘벌(伐)’은 나무를 베다, ‘치(致)’는 나아가다 또는 이르게 하다의 의미로, 나무를 베어 고개를 만든 곳이라는 뜻입니다.

 

 

🏯 중구 내 어원이 담긴 지역・지명 이야기

 

충무로는 본래 ‘을지로’ 일부였으나, 해방 이후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忠武)’를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영화산업과 인쇄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충무로 세대'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한국 대중문화 발전의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남대문은 정식 명칭으로 ‘숭례문(崇禮門)’이며, ‘예를 숭상한다’는 뜻을 지닌 조선의 4대문 중 하나입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남쪽에 있는 큰 문’이라는 의미의 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상징적 장소로 손꼽힙니다.

 

서울역 일대는 본래 ‘경성역’으로 불렸으나, 광복 이후 ‘서울역’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근처의 ‘중림동’, ‘만리동’ 등은 모두 서울역의 개통과 함께 교통 중심지로 성장하였으며, 현재도 서울의 철도·버스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