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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부. 경기도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고양시

by hwanee7 2025. 5. 10.

 

 

✅ 관할 행정동 및 어원

 

고양시는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특례시로, 덕양구, 일산동구, 일산서구의 3개 일반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44개의 행정동을 관할합니다. 각 행정동의 명칭은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유래되었습니다.

 

먼저, 덕양구의 주요 동을 살펴보면 ‘덕양’이라는 명칭 자체가 조선시대 덕양현에서 유래되었으며, 지금의 고양시 지명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행주동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대첩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며, 본래는 '살구나무가 많은 물가'를 의미하는 ‘행주(杏洲)’에서 시작되었으나, 후에 ‘행주대첩’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행복할 행(幸)’ 자를 써서 ‘행주(幸州)’로 바뀌었습니다.

 

관산동은 과거 고양군의 관아가 위치했던 곳으로, ‘관’과 ‘산’을 합쳐 지명이 형성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외지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객관이 있어 ‘관(館)’이 사용되었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관(官)’으로 표기된 것입니다.

 

일산동구일산서구의 '일산'은 백제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지명으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日山’이라 명명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마두동은 말머리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순우리말 ‘말두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말을 많이 키웠던 고을이라는 설도 존재합니다.

 

백석동은 백색의 돌이 많아 ‘백석(白石)’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지리적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사례입니다.

또한,

 

중산동은 지리적으로 중간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중(中)’과 ‘산(山)’이 결합된 지명이며,

 

탄현동은 숯을 만들던 지역이라 하여 ‘탄(炭)’과 들판 ‘현(峴)’이 합쳐졌습니다. 이처럼 고양시의 행정동들은 자연환경, 역사적 사건, 과거 지명과 생활상을 반영한 명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한 행정 단위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 지명 유래 및 이야기

 

고양시의 지명은 단순한 행정적 구분을 넘어,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맥락이 깊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현재의 ‘고양(高陽)’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 고봉현(高峰縣)과 덕양현(德陽縣)이 통합되면서 각각의 글자를 따와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고(高)’는 높은 지형이나 고봉산(현재의 북한산 일대)을 뜻하고, ‘양(陽)’은 밝고 따뜻한 햇볕이 드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즉, ‘햇볕이 잘 드는 높은 언덕’이라는 뜻이 내포된 이름입니다.

 

‘일산(日山)’이라는 지명은 고양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오래된 명칭으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와 관련된 설에 따르면, 예로부터 이 지역은 동쪽으로 탁 트여 있어 일출이 가장 먼저 보였으며, 주민들이 이를 신성시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한자로 ‘날 일(日)’과 ‘산 산(山)’을 사용해 지형적인 특색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양시의 또 다른 지역명인 ‘행주’는 본래 ‘살구나무 물가(杏洲)’라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행주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후, ‘행복할 행(幸)’ 자를 써서 ‘행주(幸州)’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표기법의 변화가 아니라 역사적 자부심과 민족의식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마두(馬頭)’는 말의 머리를 닮은 지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탄현(炭峴)’은 숯을 구웠던 고개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처럼 고양시의 지명은 자연지형, 주민생활, 역사적 사건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지역의 정체성과 기억을 간직한 중요한 문화 요소입니다.

 

 

 

📚 역사적 이야기

 

고양시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됩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세력권에 속해 있었으며, 이후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고구려,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양 지역은 고구려 때는 ‘패군(浿郡)’이라 불렸고, 통일신라 시대에는 ‘율구군(栗口郡)’으로 불리다 고려시대에 ‘고봉현(高峰縣)’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는 고봉현과 덕양현을 통합하면서 ‘고양군(高陽郡)’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고양은 한양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군사적·행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행주대첩은 고양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행주산성에서 벌어졌으며, 당시 고양 지역의 민중들도 함께 참여해 왜군을 막아냈습니다. 이후 행주산성은 항일 정신과 민족 자긍심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일산, 화정, 원당 등지에는 도시개발이 진행되었고, 특히 1990년대 이후 일산 신도시 개발을 통해 서울과 인접한 주거지역으로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도 고양시는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고양시는 이제 단순한 위성도시를 넘어 문화·역사·산업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주요 문화유산 및 명소 

 

고양시는 역사적 유산과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다양한 문화재와 명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유적지는 행주산성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2천여 명의 병력과 백성들을 이끌고 왜군 3만 명을 막아낸 장소로, 현재는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매년 ‘행주문화제’가 열리며 당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또한 서삼릉은 조선 왕릉 중 하나로, 효순왕후·익종 등 조선 왕실 인물들의 능이 모여 있는 유적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왕릉은 조선의 예법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고양시는 이러한 능 주변을 잘 정비하여 시민들이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명소로는 호수공원이 있습니다. 일산 신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이 공원은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산책로, 수변무대, 조각공원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봄과 가을에는 꽃박람회와 다양한 문화공연이 열려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고양아람누리 공연장은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과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예술 중심지로, 고양시의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 공간입니다. 또한 원마운트, KINTEX(킨텍스) 등 대형 쇼핑 및 전시공간은 상업적 기능과 관광자원을 동시에 갖춘 장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양시는 역사 유산과 현대적 명소가 조화를 이루며 시민과 방문객에게 풍성한 경험을 제공하는 도시입니다.

 

 

 

📚 설화·전설 모음

 

고양시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행주산성과 권율 장군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행주대첩 당시 권율 장군이 수적으로 열세인 조선군을 이끌고 왜군을 무찔렀는데, 이 전투에 참여한 고양 지역의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보급했다는 ‘행주치마 설화’가 유명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행주치마’는 한국 여성의 강인함과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전통의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고양시 관산동 일대에는 ‘지혜로운 여우 전설’이 전해집니다. 오래전 이 지역에 흰 여우가 살았는데, 마을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사람들을 도와주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민들은 이 여우를 산신의 화신이라 여겨 제사를 지냈고, 여우가 자주 출몰하던 고개는 '여우고개'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일산 지역에는 ‘백마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산 백마역 인근에는 예전부터 흰 말이 자주 출몰했다는 전설이 있었으며, 이 말이 지역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믿는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백마’는 지금도 일산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지역 상권이나 학교 이름에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전설은 고양시의 ‘벽제관(碧蹄館)’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국왕이 북방을 순시할 때 잠시 머물렀던 역관(驛館)으로, 이곳에서 기묘한 별자리가 관측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별자리는 조선의 장래를 암시하는 ‘운명의 징조’라 하여 당시 궁중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고양시는 단순히 행정 구역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민속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이며, 지역의 설화와 전설은 주민 정체성과 자긍심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문화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