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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성동구 편

by hwanee7 2025. 4. 12.

 

서울 야경
서울 야경

 

서울 동부에 위치한 성동구는 한강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조선시대 교통과 군사적 기능, 근대 이후 산업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입니다.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단순한 행정명칭을 넘어 역사, 풍수, 산업, 공동체의 기억이 살아 숨쉬는 이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성동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성동구는 총 13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동의 이름은 자연환경이나 역사, 전통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왕십리도선동은 대표적인 복합 지명입니다. ‘왕십리’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서 십리(약 4km) 떨어진 지점이라는 뜻으로, 왕이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도선동’은 고려 시대 풍수지리사였던 도선국사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장동은 ‘말을 기르던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군마를 관리하던 ‘마방(馬房)’이 있었던 지역으로, 오늘날에도 전국 최대 규모의 축산물시장인 마장축산시장으로 유명합니다.

 

사근동은 순우리말 ‘사근내(모래가 많은 개울가)’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지역은 실제로도 한강 지류의 수변 지형이 많아, 이름이 지형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행당동은 ‘행궁(行宮)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과, ‘골짜기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남쪽으로 산자락이 이어져 있는 지형적 특징을 고려하면 후자의 해석도 유력합니다.

 

응봉동은 북쪽에 위치한 ‘매봉산’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봉우리의 형태가 매(鷹)를 닮았다는 데서 ‘응봉(鷹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금도 응봉산은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금호1가~4가동은 모두 ‘금호’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전합니다. 하나는 ‘황금 언덕’이라는 풍수적인 명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전설 속 거북이인 ‘금오(金鰲)’와 관련된 신령한 산 이름이라는 설입니다. 오늘날 금호산과 주택가가 어우러진 고지대로, 조용한 주거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옥수동은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에는 수질이 맑은 샘과 하천이 많았고, 한강변과 가까운 입지로 인해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성수1가, 성수2가동은 ‘성동(城東)’ 지역의 일부로, 한양 도성의 동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이곳에 산업시설과 공장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공장지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수연방, 성수동 수제화거리 등 문화 산업지구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송정동은 ‘소나무 정자’ 또는 ‘송림이 우거진 마을’이라는 전통적 명칭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한적하고 평탄한 지형이 특징이었으며, 서울의 동쪽 관문에 해당하는 전통 마을로서의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 성동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성동구에는 단순히 지형이나 거리 개념을 넘어 조선의 왕실, 풍수 사상, 군사 제도, 산업화의 흐름까지 함께 아우르는 지명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십리입니다. ‘왕이 십 리 밖까지 나와 백성을 돌보거나 사신을 전송하러 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으며, 실제로는 한양 도성에서 약 10리 거리였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역참이 설치되어 교통과 유통의 중심지로 기능했고, 현대에는 대형 환승역이 들어서며 여전히 서울 동부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장동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조선의 군사 제도를 반영한 상징적 지명입니다. 말을 관리하던 국영 마장이 실제 존재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축산물 유통의 중심지로 이어지며 지명의 실용적 의미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성수동은 일제강점기 당시 산업시설이 집중되며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으로 변모했고, 최근에는 ‘성수연방’, ‘서울숲 트렌드존’ 등으로 상징되는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가 되었습니다. 낡은 공장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성수라는 지명은 이제 서울의 혁신과 감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행당동은 지형적으로 골짜기와 언덕이 혼재된 복합 지형에 위치해 있으며, 예로부터 한양 도성 밖에서 **왕실 또는 지방 관리가 머물던 임시 숙소(행궁)**가 있었다는 전승이 전해집니다. 정확한 고증은 어려우나, 동 이름에 ‘행(行)’과 ‘당(堂)’이 포함된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 성동구에 담긴 도선국사와 교통·지리적 가치

 

도선국사와 풍수지리 전설 – 성동구 도선동의 이름 유래

 

성동구 왕십리도선동의 ‘도선(道詵)’이라는 지명은 고려 초의 고승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국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했던 승려로, 당시 혼란한 사회 질서를 다스리기 위한 방안으로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한 국토 균형 이론과 도읍지 선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는 지금의 성동구 일대를 지나던 중, 이 지역이 용맥(龍脈)이 뻗어나가는 지점이자 한양의 기운을 받는 중요한 혈(穴)이라 보았습니다. 그는 “이곳은 한양 도성 동쪽 기운을 막아주는 길지(吉地)”라 말하며, 훗날 이 지역이 한양의 발전을 도울 거라고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후대에 이 지역을 ‘도선이 머물던 곳’, 또는 ‘도선의 지혜가 깃든 땅’이라 하여 ‘도선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으며, 이는 2008년 이후 행정동인 ‘왕십리도선동’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 차원을 넘어서, 성동구 일대가 조선시대부터 풍수적으로 중요한 동쪽 관문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문화사적 단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응봉동 – 철도 교통의 중심지, 서울 동북부 연결의 허브

 

성동구 응봉동은 서울시 동북부와 중부를 연결하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한 지역입니다. ‘응봉(鷹峰)’은 ‘매(鷹)가 날개를 펼친 듯한 봉우리’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실제로도 산세가 날렵하게 솟아 있습니다.

 

응봉동에는 과거부터 경의중앙선이 통과하는 주요 철도 노선이 지나며, 물류와 통근 교통의 요충지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지금의 응봉역은 비교적 소규모 역사이지만, 성수역과 왕십리역 사이, 서울숲 및 한강변과 연결되는 교통망의 핵심 구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한강과 가까우며 철도 교차 지점에 위치한 관계로, 조선시대부터 군사적·상업적 요지로 활용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 기반 시설이 들어서며 더욱 전략적인 지역으로 부상했습니다.

 

최근에는 응봉산 팔각정과 철교 전망대가 조성되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도심 속 힐링 공간이자 철도와 한강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철도와 자연, 도시의 흐름이 만나는 응봉동은 성동구가 지닌 역사와 현대성의 경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동구의 지명은 자연지형, 조선시대 군사 및 교통 기능, 그리고 산업화를 거친 도시의 얼굴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동 이름과 전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발전사 속에서 성동구만의 고유한 흔적과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