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6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광진구 편

by hwanee7 2025. 4. 14.

서울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광진구는 한강을 마주한 수변 지역, 서울과 경기 동부를 잇는 교통 요지, 그리고 풍부한 군사·문화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1995년 동대문구에서 분리되어 광진구로 독립된 이후, 교육·상업·문화 중심지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 이름과 각 동의 지명 속에는 한강, 산, 전통 마을, 고개와 나루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 광진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화양동은 ‘화양(華陽)’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하였으며, ‘화려하고 따뜻한 햇살이 드는 고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담겨 있으며, 지금은 건국대학교와 군자역 인근 상권 중심지로 성장하였습니다.

 

군자동은 과거 군자감(軍資監)이라는 조선시대 군수물자 관리기관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군자’는 ‘군대의 자재’를 뜻하며, 이 지역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음을 시사합니다.

 

중곡1~4동은 ‘중간에 위치한 곡촌(谷村,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북쪽에 아차산, 남쪽에 한강이 있어 산과 강 사이의 분지처럼 낮은 골짜기에 해당하는 지형이었습니다.

 

능동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예전에는 아차산 줄기의 능선을 따라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지역으로, 서울 동부에서 가장 대표적인 녹지 및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자양1~4동은 ‘스스로 기름지다’는 뜻을 지닌 ‘자양(自養)’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강변 저지대에 비옥한 토양이 널리 퍼져 있었던 지역으로, 농경과 취락이 발달했던 전통적인 마을 이름이 현대에까지 이어진 사례입니다.

 

구의1~3동은 ‘의로운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는 뜻의 ‘구의(九宜)’ 또는 ‘옛 의주 길의 분기점’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지금은 광진구청과 테크노마트, 워커힐 방면으로 이어지는 동서울 교통 중심지로 자리잡았습니다.

 

 

 

2. 광진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광진구 자체의 이름인 ‘광진(廣津)’은 ‘넓은 나루’를 의미합니다. ‘진(津)’은 나루터를 뜻하는 한자어로, 조선시대 이 지역은 한강을 건너는 주요 나루터이자 통행로였습니다. 특히 광진나루는 경기도 구리·하남·양평 방면으로 향하는 수로·육로 교차지점으로 기능했습니다. 이처럼 ‘광진’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 명칭이 아니라, 서울과 경기 동부를 잇는 전략적 교통 요충지로서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아차산은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 유적이 남아 있는 한성 백제의 방어 거점이었습니다. 특히 아차산성, 고구려 보루군 유적, 망우리 고개 전설 등은 지금까지도 교육과 문화해설 콘텐츠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아차(阿且)’라는 이름 자체는 정확한 유래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구려 또는 마한계 언어에서 유래한 고어 지명으로 추정됩니다.

 

어린이대공원이 위치한 능동은 일제강점기에는 ‘능골’로 불리던 산기슭 마을이었습니다. 광복 후 대규모 공원 조성과 함께 능동이라는 행정지명이 확정되었으며, 지금은 서울 시민의 가족 나들이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의동 일대는 과거에는 비교적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으나, 동서울터미널과 지하철 2호선,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등 교통망의 발달과 함께 서울 동부의 핵심 상업지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구의’라는 이름도 이에 따라 지역 대표성을 얻게 되었고, 현재는 광진구청과 주요 상권이 밀집한 중심지입니다.

 

 

 

3. 광진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

 

광진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군사 요충지, 교통 중심지, 문화 상징지로 기능해온 지역으로, 그 지명과 함께 역사적 흔적도 풍부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차산성과 고구려 보루 유적 – 삼국시대 국경 방어선

광진구의 동쪽 끝에는 아차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일대에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보루(堡壘, 산성 요새) 유적이 여러 곳 발견되었습니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던 시기에 백제와의 국경 방어선으로 아차산 능선을 따라 군사 거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차산성 일대는 서울과 경기 동부, 특히 하남과 구리 지역으로 향하는 전략적 관문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매우 컸습니다. 이곳에서는 현재도 ‘서울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이라는 이름으로 발굴·보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삼국 간의 치열한 영토 전쟁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지입니다.

 

 

광진나루와 조운(水運)의 중심 – 한강 수운의 요지

 

광진구라는 이름은 ‘넓은 나루’라는 뜻을 가진 ‘광진(廣津)’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지명은 단지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라, 실제 조선시대에 중요한 나루터였던 '광진나루'의 기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한강 북쪽에서 남쪽으로, 또는 경기도 하남, 양평, 여주 등지로 조운선(漕運船, 세곡선)이 오가던 중요한 경유지였습니다.

 

당시 조정에서 지방의 세곡(稅穀,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한양으로 실어오던 배들은 이 일대 나루를 거쳐 뭍으로 옮겨졌고, 마차나 인력을 통해 도성까지 운반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통의 흐름은 광진구가 서울과 경기 동부를 연결하는 물류·상업의 요충지로 기능했음을 보여줍니다.

 

어린이대공원 – 근현대 서울 시민문화의 상징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은 1973년 개장 이래,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가족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아 온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 공원은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닌, 해방 이후 서울의 도시계획과 시민문화 발전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원 부지는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관저 예정지로 활용될 뻔했으며, 광복 후에도 군 시설로 쓰이다가 서울특별시가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당시 ‘어린이를 위한 나라 만들기’를 기치로 내건 정부 방침과 함께 조성된 공원은, 한국 사회가 군사주의에서 민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현재도 능동과 어린이대공원은 교육,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가족 중심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광진구의 문화적 상징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광진구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강과 서울 동북부의 모든 교통이 만나는 접점이자,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요충지입니다.


지명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통해, 광진구는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서울의 동쪽 관문으로서 오랜 시간을 지나온 역사적 흔적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