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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동대문구 편

by hwanee7 2025. 4. 16.

 

서울의 동쪽 관문에 위치한 동대문구는 이름 그대로 조선 한양도성의 **동쪽 대문인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예로부터 도성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였으며, 현대에는 전통시장과 주거지, 교육시설이 밀집한 복합 생활권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지명 하나하나에 조선의 도성 구조, 일제강점기 도시 확장, 현대 도시재개발의 흔적까지 깊이 스며 있으며, 전통과 변화가 겹쳐지는 도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동대문구 관할 행정동 및 어원

 

용신동은 2008년 용두동과 신설동을 통합하면서 생긴 행정동명입니다. ‘용두(龍頭)’는 한양의 지세상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신설(新設)’은 조선시대 도성의 새로운 수로 시설이 설치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제기동은 조선시대 ‘제기거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제(祭)’는 제사, ‘기(器)’는 그릇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 사직 등에서 사용하는 제기와 제물을 제작‧판매하던 거리였으며, 지금도 전통 약령시장 등 유통 기능이 강한 지역입니다.

 

전농1·2동은 ‘밭을 갈고 농사를 짓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농경지가 넓게 펼쳐졌던 지역이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보기 드문 농촌 지명을 그대로 간직한 경우로, 근래까지도 논과 밭이 남아 있었던 흔적이 많았습니다.

 

답십리1~5동은 한자로 ‘밟을 답(踏)’, ‘열 십(十)’, ‘마을 리(里)’를 써서, 조선시대 훈련도감 군사들이 훈련을 위해 열 걸음 간격으로 움직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설이 전합니다. 지금도 군사 훈련터의 전통이 남아 있는 교육지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장안1·2동은 ‘장안(長安)’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도읍(都邑) 또는 서울을 뜻하는 전통적 지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서울 확장 구상 속에서 생긴 이름으로, 계획적 도시구조를 반영한 근대 지명입니다.

 

청량리동은 ‘청량한 마을’, 즉 맑고 시원한 기운이 흐르던 고장을 뜻합니다. 과거 한강 지류와 저지대 습지가 넓었던 곳으로, 수질이 맑고 기온이 낮아 ‘청량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회기동은 '회기'는 여러 설이 있으며, 한설에는 고려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유생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는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이 있는 교육 중심지로 발달했습니다.

 

이문1·2동은 도성 밖 ‘이문안길(里門內路)’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외곽 거주 지역이자 물자 이동 경로로 활용되던 지역입니다. 근현대에는 철도 중심 주거지로 변화했으며, 지금은 이문재정비촉진지구로 주거 환경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습니다.

 

 

 

🏯 동대문구 내 어원 및 사연이 깃든 지역‧지명

 

동대문구는 서울의 동쪽 경계이자, 도성 안과 밖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해온 지역입니다.

 

그 대표적인 중심지는 바로 청량리입니다. 청량리는 조선 후기부터 지방으로 가는 역로와 시장이 형성되던 통행의 요지였으며,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서울~원산 간 경원선의 기점이자 동부 철도교통의 허브로 기능해왔습니다. 현재도 청량리역은 GTX 등 교통 개발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제기동 약령시장은 조선시대 약재상들이 모이던 거리로, 지금도 전국 최대의 한약재 유통지로 유지되고 있는 전통 상권입니다. 약령시의 전통은 동대문구의 경제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며, ‘제기’라는 지명 자체가 제사와 의약의 연결 고리를 상징합니다.

 

답십리 고분군은 동대문구 일대에서 출토된 백제 후기의 무덤 유적으로, 이 일대가 과거 백제 문화권의 동북 경계 지대였음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일부 복원돼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교육자료와 지역문화 콘텐츠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 동대문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 

1. 흥인지문(동대문)과 도성 동쪽 관문

동대문구의 이름은 조선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 ‘흥인지문(興仁之門)’에서 유래합니다.
흥인지문은 조선왕조 도성의 4대문 중 하나로, 왕릉 행차, 사신 영접, 도성 출입의 주요 통로 역할을 했으며, 동대문 일대는 이 관문을 중심으로 교통·상업이 발달한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2. 제기동 약령시장의 역사

조선시대 제기동은 제사용 기물과 약재를 유통하던 거리였습니다.
종묘·사직에서 쓰이는 제기(祭器)와 함께, 왕실과 민가에서 사용된 한약재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 전통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전국 최대의 한약재 시장인 ‘서울 약령시장’으로 발전했습니다.

 

3. 청량리역과 철도 교통의 중심지

청량리는 경원선, 중앙선, 경춘선, 분당선 등이 연결된 동북권 교통 허브로, 일제강점기부터 서울과 강원·경기 동북부를 잇는 출발지였습니다.
현대에도 GTX-B, GTX-C 노선이 지나는 미래 교통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서울 동북부 도시 개발의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4. 답십리 고분군 – 백제의 흔적

답십리 일대에서는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대규모 고분군이 발굴되었으며, 이는 백제 후기 귀족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이 유적은 동대문구가 한성백제 문화권의 동북 경계 지대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현재는 공원과 전시관을 통해 교육 및 역사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5. 회기동과 과거 유생들의 귀향길 전설

회기동이라는 지명에는 ‘과거에 급제한 유생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이라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 설화는 오늘날 회기동이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등 교육기관이 밀집된 학문 중심지가 된 현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6.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 서울 디자인의 랜드마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디자인, 패션, 전시, 공공행사, 야간경관이 어우러지는 대표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입니다.

  • 2014년 개관,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
  • 과거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건립되어, 전통시장과 현대문화가 만나는 공간
  • 서울패션위크, 디자인 전시, 야경 명소로 유명
  • 독창적인 곡선 구조와 미래지향적 외관으로 서울의 건축·디자인 상징물

DDP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과거 동대문 상권과 미래 창조산업의 연결 고리로 자리 잡은 서울의 핵심 문화 거점입니다.

 

 

 

동대문구는 ‘도성의 동쪽 문’을 품은 서울의 전통적 외연이며,
제사, 농경, 교통, 교육, 약재 유통, 백제 유적까지 다양한 시간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인 공간입니다.